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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애프터썬(aftersun)
    순간의 순간들 2023. 2. 26. 03:18

    아래의 글은 이동진 평론가의 GV를 정리한 내용으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화 내용은 11살 소피가 아빠와 함께 튀르키예에서 보낸 여름휴가를 담고 있다. 영화는 20년이 흘러 아버지의 나이가 된 소피의 입장에서 전개된다고 볼 수 있다. 함께한 시간을 캠코더로 담았으며 영상의 숫자는 5개에 불과하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소피가 그 캠코더를 가지게 되고, 영상을 통해 20년 전 과거를 회상하기 때문에 영상 이외의 부분은 소피의 과거에 대한 기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선명하다고 볼 수는 없다.

     

    점점 진하게 형상이 들어나는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시간이 흘렀을 때 더욱 진하게 기억되는 순간들이 있다. 얼핏 보면 행복했던 11살 여름 방학이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소피의 아빠는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음식값을 지불하지 않고 도망가는 장면에서, 개인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예약한 호텔의 방 크기나 패러글라이딩을 할 수 없는 부분에서 알 수 있다. 흥미를 보였던 양탄자를 구매하지 못했던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동시에 모든 부분이 소피와 대비된다. 고향에 대해 소피는 행복한 곳으로 이야기하지만, 아빠는 정착하지 못하고 또 이혼을 한 장소임을 알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일이 일어난 그 밤, 소피는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지만 아빠는 최악의 하루를 보냈다. 극명하게 나타나는 부분은 화장실에서 피가 났을 때다. 소피는 노란 배경에, 아빠는 파란색 배경의 화장실에 있으며 소피가 기분 좋게 말을 할 때 아빠는 피를 흘리고 있다. 서로를 볼 수 없으며 관객만 둘을 보고 있다. 영화에서 '노란색'은 밝은 부분을 상징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무엇이든 살 수 있는 호텔 이용권 팔찌가 노란색이고 기분이 좋을 때 마시는 콜라도 '레몬 환타'다. 

     

    아빠의 삶으로 조금 들어가보면, 시기적으로 10대 후반 혹은 20대 극 초반에 아빠는 소피를 얻는다. 아마 아빠가 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을 것이고 그 후에 언제인지 모르지만 이혼을 한다. 딸과 다툰 다음 날, 소피는 괜찮다고 하지만 아빠는 꼭 사과하고 넘어가야 하고 '중요한 날'이었다고 언급한다. 아빠에겐 그 날이 상당히 의미가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방황하다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에서, 자살 시도를 했다는 느낌도 받는다. 아빠의 영상을 소피가 가지고 있고 또 31살 소피에게 아빠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행 이후에 아빠는 어느 순간 자살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영화 처음과 끝에서 아빠의 춤을 추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요란한 조명 속에서 몸을 흔드는 아빠의 모습은 처음엔 웃음소리 같다가 어떤 순간엔 비병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이것은 소피를 공항에서 보낸 아빠가 문을 통해 사라진 후에 나오는 장명이기 때문에 여행 후에 아빠는 자살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에 더 힘이 실리게 된다.

    물론, 위에 언급한 모든 것들은 추측일 뿐이다. '좋은 작품은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말처럼, 샬롯 웰스 감독은 어떠한 정답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꼬리를 문다. 아빠의 나이가 된 소피는 같은 침대를 쓰는 여성을 통해 동성애자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어린 시절 그 중요한 일이 있었던 밤에 첫 키스를 하였지만 색다른 경험 정도로 말하는 장면에서, 그리고 아빠가 바다로 뛰어들어 혼자 방으로 왔을 때 동성 커플의 애정 행각을 본 장면에서 장기적으론 소피가 동성애자임을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면 아빠도 이성애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어쩌면 그래서 이혼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물론 이것 또한 막연한 추측일 뿐이다. 

     

    아빠와 다투게 된 동기는 예고 없이 소피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자고 권했기 때문이다. 결국 소피가 혼자 부르게 되는데, 노래의 가사도 아빠의 상황가 묘하게 잘 어울린다. 고대 원형 극장 같은 분위기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고 아빠는 위에서 아래로 소피를 바라보다 자리를 뜬다. 다음날 소피가 아빠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서 깜짝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도 사람들은 아래에 있고 아빠는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얼굴을 손으로 가려서 어떤 표정인지 알 수 없지만, '아빠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편집이다. 영화 초반 호텔에 도착해서 침대에서 잠든 소피의 신발을 벗겨주는 장면에서, 사운드는 이미 이전에 나왔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빠가 호텔 직원과 방 사이즈에 대해 통화하는 사운드가 깔린다. 세상 모든 아빠에게 바치는 헌시라는 감상평처럼, 딸을 향한 아빠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같은 제작사라서 그럴까, 일렁이는 바다 장면에서 영화 <문라이트>가 계속 떠올랐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빠가 소피를 영국으로 보내고 공항을 빠져나올 때 장면이 회전하며 현재의 소피와 아빠가 연이어 나타난다. 그리고 아빠는 현란한 조명 속에서 춤추는 장면 속으로, 비명인지 웃음인지 모르는 장면으로 들어간다. 이 장면도 당연히 촬영한 5개의 영상에는 없는 장면이기 때문에 온전히 소피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장면일 것이다.

     

    해석을 듣기 전에는 몰랐는데, 이동진 평론가의 해석을 듣고 소피가 반추하는 과거가 그리고 빛바랜 필름 속에 선연하게 피아나는 기억이 다르게 느껴진다. 반 접은 자국이 나타난 포스터에서도, 기억과 감정을 조립하는 소피의 마음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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