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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벨만스(The Fablemans)순간의 순간들 2023. 4. 9. 19:51
아래의 글은 이동진 평론가의 언택트 톡을 정리한 내용으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라고 지칭되지 않지만, 그의 유년 시절이 담긴 자전적 영화 <파벨만스>. 어느 분야에서든 거장이라 불리는 이들은 자신만의 확고한 세계가 있다. <파벨만스>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가 어디에서부터 출발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 제목이 스티븐 스필버그나 작품 속 인물 새미가 아니라 <파벨만스>인 이유도, 그의 가족의 이야기를 보여주며 그의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가 탁월한 이유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어린 시절을 다루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예술로서 영화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 주요 사건들이 그의 삶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겠지만,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아빠와 엄마
성격과 직업만큼이나 다른 두 사람. 영화 도입에 극장에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두 사람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어린 새미에게 아빠는 영화가 무엇인지 사전적 정의로 설명한다. 반면, 엄마는 '영화는 꿈'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기차 충돌 장면에서 영감을 얻어 영화를 찍고 싶어 하는 새미에게 아빠의 카메라를 몰래 쥐어준 것도 그에게 꿈을 전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엄마가 악몽을 꾸고 다음날 갑자기 찾아온 외삼촌 보리스가 새미와 같은 방을 쓰며 영화에 대한 꿈을 꾸게 하는 점도, 결국 엄마의 꿈이 새미를 영화로 이끄는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두 사람을 가장 극명하게 대비하는 부분은 샘이 찍은 영화 두 편이다. 하나는 전쟁 영화로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아빠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가족이 캠핑을 찍은 다큐멘터리로 밤에 춤추는 엄마의 모습이 아름답게 담겨 엄마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어머니를 잃은 상실에 빠진 엄마를 위해 아빠는 샘에게 다큐멘터리를 먼저 편집해 보여달라고 하고, 샘은 자신에게 중요한 전쟁 영화 촬영을 먼저 하고 싶어 내적 갈등을 한다.
영화와 서커스
두 작품 사이에서 갈등하는 장면은 보리스 외삼촌이 예언한 새미 앞에 놓인 삶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다소 폭력적인 방법으로 보리스 외삼촌은 새미에게 영화를 찍어며 살아갈 삶이 쉽지 않음을 알려준다. 가족들도 어느 순간 등을 돌릴 것이고 외로운 가시밭길을 걷게 될 것이라 말한다.
삼촌이 처음에 했던 일은 서커스단에서 사자를 관리하는 일이다. 그러다 능력을 인정받아 사자와 함께 위험한 무대에 오른다. 위험하지만 그 매력에 빠져든 것이다. 현재는 영화 쪽 일을 하고 있는 그는 촬영 장면에 대한 구상을 몰입하여 설명하는 조카에게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영화와 서커스 모두 사람들이 거대한 공연장에 모여서 어두운 공간에 앉아 밝은 무대(스크린)를 바라보며 진행된다. 그리고 어린 새미가 매료되었던 기차 충돌 장면도, 위험한 사자와의 묘기도 위험을 무릅쓴다는 공통점이 있다.비밀
엄마와 새미 사이에 두 가지 비밀이 있다. 첫 번째, 세실 B.드밀의 <지상 최대의 쇼>에 나오는 기차 충돌 장면을 보고 촬영을 하고 싶은 새미에게 엄마는 아빠의 카메라를 몰래 건내며 "이것은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라고 말한다. 두 번째, 가족이 떠난 캠핑 장면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엄마의 불륜을 목격한다. 엄마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 지고 엄마가 새미의 등을 때리는 일이 생기자, 엄마를 방으로 데리고 와서 자신이 편집한 장면을 보여준다. 자신의 외도를 아들이 알았다는 사실에 엄마가 울면서 나오자 이번에는 새미가 "이것은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할게요."라고 말한다. 두 사건 모두 새미와 엄마만 아는 장면이고, 새미가 편집한 영상을 벽장 속에서 감상하는 감상한다. 실제로 어린 시절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세실 B.드밀의 <지상 최대의 쇼>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
애리조나에서 새미가 만든 작품들은 결국 그가 스스로의 작품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고 카메라를 내려놓게 만든다. 2차 세계 대전을 다룬 영화에서 긴 시간에 걸쳐 주연 배우에게 디렉션을 주지만, 배역에 몰입한 배우는 새미의 의도와 달리 계속해서 석양 속으로 걸어간다. 엄마의 불륜 장면이 담긴 다큐멘터리도 촬영을 할 때 그는 자신이 무엇을 찍었는지도 모른 채 촬영에 몰입했고, 편집을 할 때야 진실을 알게 된 새미는 좌절한다. 모든 것이 자신의 구상대로 흘러갈 것이라 예상했던 영화를 그는 전혀 통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아빠가 IBM으로 이직하며 캘리포니아로 온 새미는 첫사랑을 만나고 졸업 파티의 영상 촬영을 담당하게 된다. 이 작품에선 그를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괴롭혔던 미치를 완벽한 영웅으로 묘사하여 헤어진 연인과 이어지게 만든다. 애리조나에서의 작품들과 달리 모든 것을 통제한 작품을 만들게 된 것이다. 새미의 촬영과 편집으로 미치는 그토록 원한던 전 연인과 다시 만나게 되지만 실제와 다른 자신의 모습에 눈물을 흘린다.
엄마와 미치
두 사람은 새미에게 큰 상처를 주고 외도를 저질렀다는 공통점이 있다. 엄마는 결국 아빠와 이혼하고 아빠의 동료였던 버트와 베니와 재혼함으로써 새미에게 큰 상처를 준다. 미치는 전학 온 새미를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괴롭히고 폭행한다. 새미는 두 사람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어 복수하는 모습을 보인다. 엄마와 미치 모두 새미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이지만, 그를 영화로 이끈 인물들이기도 하다.마법 같은 엔딩
영화의 끝이 흥미롭다. 새미는 대학에 진학하지만 그다지 잘 풀리지 못한다. 그러다 우연히 LA에 방송국에 취업을 하게 되고 거기에서 헐리우드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손꼽히는 존 포드를 만나게 된다. 두 사진을 가리키며 "지평선이 어디에 있지?"라고 묻는다. 하나는 아래에 있고, 하나는 위에 있다고 새미는 답한다. 존 포드는 "지평선이 바닥에 있을 때 그건 흥미롭다. 지평선이 맨 위에 있을 때는 그것도 재미있다. 지평선이 중앙에 있을 때는 지랄맞게 지루해진다."라고 말해준다. 새미에게 영화 감독으로서 한 뼘 자라게 해주는 순간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영화감독으로서 이룬 것이 없는 새미가 스튜디오 뒤쪽으로 걸어가는데 카메라 앵글이 마법을 부린다. 지평선이 가운데 있었는데 마치 존 포드의 말을 듣고 새미가 변화한 것처럼 앵글을 고쳐 잡아 지평선을 아래로 만들고 새미가 걸어가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미래를 알 수 없지만,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새미의 삶에 기대감이 올라가는 장면이다.
글재주가 없어 구구절절 적었지만 왓챠페디아 어플에서 위의 내용들을 세 줄로 요약한 댓글이 있어 그것으로 포스팅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영화를 바라보는 스필버그의 눈
세상을 바라보는 스필버그의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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