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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초 돌아보기] 4. 질서 유지인선생님의 일기장/2023년 2025. 2. 16. 01:06
-23.08.12(토), 비
매주 집회가 계속되었고 인원은 점점 늘어갔다. 후원도 점점 늘었고 각 지역에서 출발하는 단체 버스부터 영상 촬영까지 집행부를 중심으로 집회도 점점 조직화되어 갔다. 그에 따라 집회 운영에 필요한 인원도 점점 늘어났다. 세 번의 집회에 하나의 검은 점으로 참여하며, 피켓을 나눠주고 안내하는 질서 유지인 선생님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인디스쿨에서 네 번째 집회의 질서 유지인을 모집하여 주저 없이 지원했다.
집회에 참여하는 선생님께서 수고한다고 나눠주신 사탕과 질서 유지인 명찰 집회 전체에 대한 안내부터 질서 유지인 카톡방 등 집회에 필요한 소통은 주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으로 이루어졌다. 개인 정보의 노출 없이 안전하고 인디스쿨을 통해 공유가 되기 때문에 외부인이 들어올 가능성도 적었다. 처음 들어간 구역 카톡방에서 인원이 충분하다고 해서 새롭게 추가된 구역으로 옮길 사람은 링크를 눌러 넘어가라고 해서 6구역으로 넘어갔다. 구역 안에서도 팀을 나누어 팀장 주도 하에 담당할 구역이 정해졌다. 일기예보에 비가 오다고 하여 집회 안내에는 꼭 우의를 지참하라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비를 싫어하는 편이라 비가 오지 말라고 기도했지만, 어김없이 날은 흐렸고 집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6구역 집회 시작 전 참가자 구역 안내 및 환자 발생 시 조치 요령 등을 숙지하고 정해진 위치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6구역이라 선생님들이 바로 오지 않았지만 각 지역에서 도착하는 버스에서 내려 1구역부터 착석하기 위해 이동하는 선생님들께 안내를 하며 피켓을 나누어 드렸다. 고향인 대구에서 온 버스에서 내리는 선생님들이 왠지 모르게 반가웠고, 혹시나 아는 얼굴이 있을까 유심히 살폈다. 얼마 되지 않아 6구역에도 선생님들이 오기 시작하여 안내하고 피켓을 나눠드렸다.
처음 만난 사이지만 같은 구역에서 봉사하는 질서 유지인 선생님들에게서 끈끈함과 동질감을 느꼈다. 집회 전 오픈 채팅방에서 물이나 피켓 등을 쉽게 옮기기 위해 이동식 수레를 가져올 수 있는 선생님을 조사했는데 몇 분이 자원하셨다. 집회 당일에서야 각 지역에서 종각역 일대까지 이동식 수레를 가지고 오는 것이 얼마나 수고스로운 일인지 알았고 가져와주신 선생님들께 너무 감사했다. 취재 온 외신들과 지나가는 외국인들에게 서이초 사건과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교사들의 움직임을 알리기 위해 영문 인쇄물까지 준비해 오신 선생님들을 보고 감탄하기도 했다.
우리 구역에서 20여 명의 선생님을 이끄는 팀장님은 알고 보니 임용 후 발령도 받지 않은 새내기 선생님이셨다. 그냥 있을 수 없어서, 자신이 발령받아 생활할 교육 환경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 팀장을 맡았다고 하시는데, 교대를 막 졸업한 후배님이지만 존경스러웠다. 집회 중 한 중년 여성분이 우리 구역을 찾아와 팀장님을 찾으셨는데, 알고 보니 몇 년 전 교단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가족의 억울함을 선생님들께 호소하고 싶어 무대에서 발언할 방법을 물으셨다. 팀장을 맡은 선생님도 역할을 받아 봉사하는 것일 뿐 그 방법은 알지 못했는데, 너무 오래 정신적 고통으로 힘드셨는지 지속적으로 무리하게 부탁을 하셨고 팀장 선생님이 곤란해 보였다. 얼른 대화에 끼어들어 공감해 드리고, 중앙 집행부에 가야 함을 설명드리고 안내까지 했다.팀장 선생님이 많이 당황해 보여서 안심시켜 드렸다. 공교롭게 같이 연구회를 하는 P선생님의 청주 교대 직속 후배로 후에 두 사람이 만날 때 집회 이야기를 하는데 P선생님이 듣기에 '연구회', '바이올린' 등 너무 익숙한 키워드가 나와 그 자리에서 나에게 연락을 하셨다. 참 세상이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미에 근무하는 J선생님께서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왔다 일부러 나를 보러 6구역에서 집회에 참여하셨다. 집회 현장에서 만나니 더 반가웠다. 비가 오는 가운데도 새내기 교사부터 관리자, 퇴직 교원까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자리에 참여했고 6개의 교원 단체도 성명서를 내며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할 것을 다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서이초 선생님 말고도 슬픈 진실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하지만 그분들을 위로하기라도 하는 듯한 하염없이 빗줄기 속에서 자리를 지키는 선생님들을 보며 나아갈 힘을 얻기도 했다. 다음 집회는 아동학대처벌법 개정 촉구를 위해 국회에서 모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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