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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이초 돌아보기] 2. 빗속의 첫 집회
    선생님의 일기장/2023년 2025. 2. 4. 14:52

    - 2023.07.22(토), 비

    서이초에 다녀온 다음날인 금요일. 서이초 관련 뉴스는 급속히 퍼졌고 모든 언론이 1면에서 다루었다. 신규 교사가 1학년 담임을 맡은 부분, 일반 교실도 아닌 가장 구석의 창고 같은 공간을 사용한 부분, 학생 사이 갈등 속에서 학부모에게 민원을 받은 점 등이 부각되며 새로운 소식이 나올 때마다 속보로 보도가 되었다.

    학교에서도 이 일이 예삿일이 아닌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할 때 누군가 인디스쿨에 집회를 주관하는 게시글을 올렸다. 방학식이라 정신 없는 와중이지만 같은 학년 선생님들 대부분이 당연히 참여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옆반인 S선생님, 그리고 3학년에 H선생님과 함께 토요일에 서울에 가기로 했다.

    집회, 투쟁 같은 것은 대학 시절 교대 통폐합 관련하여 참여한 것이 전부라 상당히 막연했다. 방학식 다음날인 집회 당일이 되어서야 급하게 돗자리와 일기예보를 보고 우의를 준비했다. 검은 옷을 입고 오라는 안내를 보고 S선생님, H선생님과 기차역에서 만나 서울로 향했다. 종각역에는 생각보다 많은 인파가 모였고, 거의 정시에 도착했는데 이미 세 개 구역이 다 차서 4구역에 앉게 되었다. H선생님은 대학 동기들과 함께하기로 하여 S선생님과 같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처음이지만 교사들 특유의 성실함과 배려가 묻어났으며, 질서 있는 가운데 집회가 진행되었고 이틀 남짓한 준비 시간이었지만 안내도 잘 되었고 도와주시는 선생님들도 모집하여 원활하게 운영되는 모습이었다. 가장 걱정한 부분인 '특정 정치 성향의 단체가 주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부분은 공지 대로 사실이 아니었고 모든 선생님들이 정치적 성향 없이 자발적으로 추모를 위해 참여한 집회였다. 취재 기자님들에게도 이런 부분이 기사에 반영될 수 있도록 안내가 나갔다.

    시작과 동시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보신각(1구역) 메인 행사가 진행되어 내 구역에서는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집회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비가 와도 모두 자리를 뜨지 않았고, 유튜브 라이브라 무대와 시간 차이가 있었지만 목청을 다해 구호를 외쳤다. 집회와는 거리가 먼 교사 집단이지만, 이렇게 모여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낯설면서 대단하게 느껴졌다. 방학식을 하고 오느라 집회 장소에 와서야 구체적인 구호 내용을 살피는데, 이때는 아직 아래의 구호들이 얼마나 절실하고 필요한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연단에 올라온 선생님 중에 발령 전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며 수업 시작 20분도 안 되어 정당한 교육 활동으로 학생을 지도했는데 아동학대로 신고를 당해 경찰서를 드나들게 된 선생님의 사연을 듣고 피가 거꾸로 솓았다. 늘 성실하게 살아온 선생님은 처음으로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았고, 선생님의 어머니께서는 잘못도 없는데 혹시나 교직 생활에 피해가 있을까 보이는 경찰관님들께 머리 숙이며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했다고 했다. 당연히 무죄가 나왔지만, 무죄가 나오는 몇 달의 시간 동안 피 말리는 시간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이게 현실이었다. 인원이 몰릴 것을 우려하여 종각역이 일시 폐쇄되어 버스나 다른 지하철 역을 이용해야 했고, 해산하며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선생님들을 만나 인사하기도 했다.

    집회를 마치고 다시 서이초로 향했다.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동행한 S선생님은 아직 서이초를 가지 못해서 가고 싶다고 말하였다. 흐린 하늘에 서이초는 더 슬퍼 보였고, 근조화환은 더 많아져 서이초를 몇 바퀴를 돌아 감싸고 있었다. 선생님의 교실에 직접 추모하기를 원하는 교사들과 공개를 꺼리는 교육청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있었는데, 결국 교실 외벽에 헌화가 결정되었고 서이초 가장 구석에 있는 교실로 줄이 늘어져 있었다. 자꾸만 집회에서 같이 불렀던 이하이의 '한숨'이라는 노래가 귓가를 맴돌았다.

    선생님 교실은 본관과 체육관 사이에 구석한 곳에 있었다. 이 외로운 곳에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여러 곳에서 기부된 꽃들을 서이초에 근무하는 선생님들께서 나누어주셨다. 1시간 이상 기다려 선생님 교실에 조문을 하였다. 그사이 더 많은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었고, 자발적으로 봉사하시는 선생님들은 포스트잇이 비에 젖지 않도록 비닐로 감싸는 작업을 해두셨다.

    사건의 실체가 드러날수록 교사들과 시민들의 발길은 더욱 늘었다. 직업을 떠나 인간으로서 슬픔과 분노를 많은 사람들이 같이 느끼는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이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간절만 마음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다.

    방학식에 받은 편지를 집회 준비로 정신이 없어 열어보지 못하다가 집에 와서 열어보았다. 육쌈반 학생들의 편지와 나를 캐릭커쳐 한 포토카드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정말 고맙고 힘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고마운 마음을 뒤로하고 대학원 수업을 들으러 대구로 이동할 짐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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