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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와 학부모 사이선생님의 일기장/2023년 2023. 3. 21. 02:20
저경력 교사가 많은 우리 학교에서 학부모님들이 교사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을 때가 있다. 나를 대할 때는 절대 그렇지 않은데 대화 중에 교사를 하대하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이는 학부모님만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을의 위치가 되려는 교사들에게도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실무사님 같은 다른 교직원들 중에서도 나이가 어린 교사들을 존중하지 않고 하대하는 분들이 있다. 따끔하게 그러지 마시라고 하려다 말을 집어넣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모습을 목격할 때면 기분이 좋지 않다.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선생님들이 그런 대우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고, '온전히 존중받지 못하는 교사가 온전히 학생들을 존중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니다. 하지만 기분이 안 좋은 진짜 이유는 내 과거의 깊은 우울의 골짜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5년 전 군대를 막 전역해 첫 담임을 맡았던 나는 지금처럼 의욕이 넘치는 교사였다. 그리고 학생들의 갈등을 해결하고 학부모를 대하는 부분에서 스스로도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2년 차 교사 치고는 충분히 잘하고 있었음에도, 정말 큰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학부모와의 관계에서 동등한 위치가 아니라 을을 자처했다는 생각이 든다. 선배들에게 충분이 조언을 구했음에도, '교사로서 저의 판단은 이렇습니다.'라고 말하고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스테이크 집에서 점원이 손님에게 고기 굽기를 물어보듯 학부모의 의중을 살피고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조심스레 말하곤 했다.
문제는 정말 큰 일이 터졌을 때마다 찾아왔다.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내가 을을 자처했던 순간의 순간들이 모여 학부모의 마음속엔 내가 아래에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에, 손님이 점원에게 갑질을 하듯이 무리한 요구를 아무렇지 않게 쏟아냈다. "선생님, 이 정도는 해주실 수 있잖아요.",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당연히 그렇게 하실 줄 알았어요. 어떻게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시나요." 등등.. 2년 차 교사가 들어도 터무니없는 요구임에도, 이를 당연히 여겼고 촉각을 다투는 시기에 학부모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설득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또한, 학생 사이에 일어나는 골이 깊은 문제는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고, 간단히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모두가 답답한 상황이 이어진다. 그런 상황에서 자식의 힘든 순간을 목격하고 감정이 북받친 학부모가 모든 책임을 전가하기 딱 좋은 사람은 가장 만만한 담임교사였다.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듯이 온갖 험한 말들을 쏟아 냈다.
시간이 흘러 감정을 추스리고 나에게 모두 사과를 하셨지만, 그 시기의 일들은 나에게 큰 상처를 주었고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과 수업에도 일정 기간 지장이 있었다. 심지어 지금도 가끔은 내 가슴을 콕콕 찌르곤 한다. 그 순간부턴 학부모와의 관계에선 단 한 순간도 을이 되어선 안 되고 최소한 동등한 위치, 특히 학생 사이의 갈등 해결이나 수업에 있어서는 압도적인 전문가가 되어 학부모 위에 있어야 나를 지키고 학생들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기가 내 교직관이 100% 성직자 관에서 전문직 관으로 일부 이동하는 순간이다.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학부모와의 관계는 학생들은 축구 선수, 교사는 감독, 학부모는 관중석에서 선수들을 응원하는 관중에 비유할 수 있다. 이렇게 설정하고자 하는 이유는 감독(교사)와 학부모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를 규정하기 쉽기 때문이다.
감독은 경기 결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학급이 잘 돌아가고, 그렇지 않은 데에 책임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가 감독의 책임은 아니다. 감독이 최선을 다해 선수를 파악하고 조언을 했음에도 그 선수가 결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또한, 준비 운동도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의도치 않게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교사가 관심을 가지고, 생활 지도를 꾸준히 노력해도 소외되거나 상처받는 학생들은 생기기 마련인데 이 모든 것이 교사의 탓은 아니라는 점이다.
응원석에 있는 관중이 감독에게 특정 전략을 쓰라고 말하고 감독이 그것을 실천에 옮긴다면 이상할 것이다. 감독은 작전을 낼 때마다 관중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는다. 다만, 관중은 감독보다 선수를 더 잘 아는 부모님이기 때문에 선수를 어떻게 기용하고 어떤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 선수에게 좋은지 의견을 나눌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선택은 선수의 상태와 학부모의 의견을 반영하여 감독이 한다. 그 후에 인터뷰에서 질문을 받는다면 왜 그런 전략과 지시를 했는지 설명하는 절차를 가진다.
또한, 관중은 경기장 안으로 들어와선 안 된다. 경기장은 오롯이 선수와 감독이 머무는 공간이고, 선수는 선수끼리, 학부모는 학부모끼리 대화하는 것이 원칙이다. 감독은 선수를 지도하는 사람이지, 학부모의 갈등을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다. 학부모 사이의 대화가 일정 수준의 넘어간다면 그 사이에 있을 필요 없이 두 사람이 대화를 하라고 하고 학생에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과거를 떠올려 본다면, 이런 비유가 이해는 쉽지만 실천으로 옮기기 힘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어디까지가 교사의 역량이고 어디까지 개입하고 지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교사는 너무 과하게 학생들의 행동, 관계 하나 하나에 개입하고 반대로 개입해야 하는데 지켜보기만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부분은 경험이 쌓이며 선배 교사나 동료 교사와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학부모 판단에 교사가 어리고 갈등이 속 시원하게 해결이 되지 않으면 자꾸 선을 넘으려 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시간이 쌓이며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선다면 선이 침범당할 때마다 그 선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한, 그전까진 주변 선생님들과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선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의 문제를 잘 해결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조금 맥이 다르지만, 전문성을 기르며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로 살아가는 것이 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선을 넘어 교사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어 딱 월급 200만 원만큼만 하는 교사가 되길 바라는 학부모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내가 전문성을 갖추고 아이들에게 헌신하자, 학부모는 자연스레 그 선을 넘지 않게 되는 부분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튼, 일부 학부모님들의 경우 없는 언행이 우리 학년 선생님들이 좋은 교사임을 변하지 않게 하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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