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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색 학부모회
    선생님의 일기장/2023년 2023. 4. 5. 02:22

    개학과 동시에 녹색 학부모회 관련 안내가 왔다. 지원을 받아 봉사를 하는 기존 방식이 아닌, 모든 학부모가 자녀 수만큼 아침에 봉사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하는 학교들이 있지만, 일정을 짜고 관리하는 부분 등 담임 교사들에게도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방식이 아무 협의 없이 정해져 당혹스러웠다. 마침 오후에 학년 부장 회의가 있어서 부장님들은 한 목소리를 냈고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다음날 오전 일방적으로 모든 학부모가 녹색 학부모회 1회 봉사를 한다는 가정 통신문으로 발송되었다. 부장 회의가 너무 늦게 끝나 교무 부장님이 담당자와 대화를 하지 못했고, 다음날 오전 결재가 난 후에 담당자가 바로 안내장을 내보낸 것이다.
     
    교사들 반응이 좋지 않았다. 학부모 여론도 좋지 않았다. 이 사건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아파트 단지에 입주가 시작되었지만, 바로 옆 개교 예정인 초등학교가 완공되지 않아 그곳에 사는 학생들은 1년 반 동안 우리 학교 학생이 되었다. 그러면서 교통 지도가 필요한 횡단보도가 늘어나서 자발적 지원으로는 녹색 학부모회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다. 공교롭게 학교에 인접한 가장 큰 아파트 단지는 횡단보도 없이 단지에서 바로 학교로 이어진다. 이곳에 사는 가정 입장에선, 특히 맞벌이 부부의 경우 연차를 쓰며 아침에 나와 다른 아파트 단지 학생을 위해 녹색 학부모회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학교에서는 학생 한 명 당 한 번의 봉사를 제안했기 때문에, 바로 옆 아파트 단지에 사는 자녀 셋을 둔 학부모님은 자녀가 1년 내내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등교를 해야 하는데 세 번의 봉사를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수요일 전담 시간 교장실을 찾았다. 교사들의 반응이 어떤지 전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게 하는 것이 부장 교사의 역할이라 생각이 되어서. "기존처럼 지원을 받아서 해도 좋고, 전교생 학부모가 다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너무 급하게 진행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학부모 반발이 심할 것으로 예상되며 그 부담은 담임 교사에게 전가됩니다. 부장 교사들은 교사들을, 교사들은 학부모에게 문의가 있으면 설명해야 하는데, 왜 이것을 해야 하며 어떤 과정을 통해 진행되는지 부장인 저도 모릅니다. 혁신학교 2년 차인 우리 학교에서 진행되는 이 전체 과정이 너무나 비민주적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세부적인 진행 방식이 달라지고 선생님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진행 방식을 공지하는 담당 선생님에게 해당 업무가 너무나 크게 다가가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은 요지부동이셨다. 전교생 학부모가 참여하는 부분에 장점을 논하시고, 담당 교사가 수고스럽지지만 처음에 한 번만 짜면 학부모들이 알아서 할 것이라 하셨다. 교직 3년차 담당 교사가 어떻게 1000명이나 되는 학부모의 일정을 짜는지 반문했고 결국 담임 교사들이 해야 할 것이라 답했다. 담임 선생님들이 하는 것이 왜 수고스럽냐는 입장이시다. 그리고 다 모였을 때 '일정 관리를 잘해서 처음에 짜고 자기 반 하기 전 안내할 수 있도록 알람 설정만 하면 되는데 뭐가 문제지.'라고 말하시며 선생님들께 한 소리 해야겠다는 식으로 말하셔서 정말 깜짝 놀라서 수첩에 적으시는 걸 막으며, 선생님들이 지급 당혹스럽고 부담스러워 입이 나와있는 상태이며 잘못이 없으시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말하면.. 진짜 여론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절대 다그치시면 안 된다고 말했다. 결국 포기하고 오늘 학부모님들께 잘 설득해 주시고 선생님들에게도 왜 이렇게 진행되었는지 잘 설명해 달라고 말했다. 
     
    학부모 총회가 있었고 해당 내용은 학교의 일방적인 제안으로 설명되고 끝이었다. 너무 답답하여 지난 학교에서 근무했던 부장님들께 자문을 구하고 늦은 시간까지 학부모회 관련 조례나 메뉴얼을 공부하고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학부모회는 법적으로 구성하도록 되어 있고 관련 예산이 편성된다. 또한, 학부모회에서 의결해야 하는 사안이 구체적으로 조례에 나열되어 있는데 전체 학부모가 참여하는 녹색 학부모회의 경우 학부모회 의결 사안이다. 우리 학교는 학부모 총회에서 해당 사안을 일방적으로 설명만 하고 의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절차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진행이 되어 봉사를 하다 사고가 생길 경우, 다른 학교에선 학부모가 학교에 "우린 하고 싶지 않았는데 학교가 일방적으로 시켜서 봉사를 하다 사고가 났다."라고 항의하는 사례가 있었고 이 경우 책임은 고스란히 학교에서 떠맡는다.
     
    구체적인 조례와 절차의 부적절성을 가지고 교장, 교감 선생님에게 다음날 설명을 드렸고 이렇게 딴지를 거는 부분에 대해 불편해하셨지만 임시 학부모 총회를 열기로 하였다. 학교 옆 대단지 학부모님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녹색 학부모회를 운영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될 것이라 생각이 되었는데 예상과 달리 압도적으로 전체 학부모가 봉사하는 방향으로 결정되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뛰어다닌 이유는 전체 학부모 봉사로 진행되지 않아 이 부담이 담임 교사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을 원했기 때문에 결과에 많이 허탈했다. 오히려 관리자를 성가시게 하는 교사로 보이고, 또 내 제안으로 임시 학부모 총회가 열려 학부모회 담당 선생님과 녹색 학부모회 담당 선생님의 일이 번거로워졌는데 결과도 예상과 달라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그럼에도 노력이 물거품은 아니다. 학부모회는 전체 학부모를 대변하는 권한을 가지며, 거기서 결정된 사항이기 때문에 학부모의 민원에 학교는 설명할 근거가 생긴 셈이다. "학부모 총회에서 학부모님들이 결정하신 사안이고 저희 학교는 해당 내용을 지원하기 위해 봉사 시간표를 짜는 겁니다."라고. 담임 선생님들이 설문을 통해 학급 시간표를 짜게 되었지만, 큰 반대 없이 진행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공부를 하고 메뉴얼을 숙지하여 전문성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 불합리하고 민주적이지 않은 부분에 대해 항의를 하는 것은 쉬운데 이것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상당히 낮고 오히려 그런 문제를 제기한 교사를 유별난 교사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교직에 팽배하다. 하지만 메뉴얼을 가지고 절차적 정당성을 설명하자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셨다. 
     
    결국, 녹색 학부모회는 모든 학부모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다행이 다자녀 가정은 한 번만 봉사하면 된다. 강하게 반대하였지만, 정해졌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우리반 학부모님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시간표를 짜서 제출했다. 한 번 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내년에는 보다 수월한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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