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키17
아래의 글은 이동진 평론가의 GV를 정리한 내용으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키17>은 봉준호 감독의 8번째 영화로, <기생충> 이후 6년 만의 신작이다. 이전의 작품들은 직접 시나리오를 쓰거나 <설국열차>처럼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화사에 제안하여 영화를 만들었는데, <미키17>은 영화사로부터 온 제안을 처음으로 수락하여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으로 죽으면 기억과 함께 다시 프린트되는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영화로, 원작은 애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7'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
<미키17>에서는 기존의 봉준호 감독의 영화와 사뭇 다른 느낌의 요소들이 많이 있다. 우선, 로버트 페티슨의 보이스 오버가 많이 나타나 미키17의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 부분은 영화 초반과 후반부에 등장하는 루핑 구조와 맞물려 영화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미키17이 죽은 줄 알고 미키18을 프린트하여 두 명의 미키가 만나게 되는 내용은 시놉시스에도 등장한다. 감독은 영화 시작 후 30분 정도에 나타나는 미키17의 고립 장면을 영화 맨 처음에 넣은 후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해당 장면을 다시 보여주고(루핑) 바로 두 명의 미키를 만나게 한다. 그리고 두 명의 미키가 만남으로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은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익숙한 것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소재나 장면들이 눈에 보이기도 했다. <옥자>, <괴물> 등에서 볼 수 있는 크리처물적인 요소인 '크리퍼'를 통해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미키 반스가 익스펜더블이 될 때 생뚱맞게 여드름을 짜야한다고 진행자가 말하는 장면이나, 마지막에 크리퍼가 인간들에게 위협한 내용들이 거짓말인 점도 봉준호 감독 특유의 유머가 나타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기생충>에서 나타난 계급에 대한 요소도 나타난다. 과학자들은 노는 것에 정신이 팔려 미키가 프린트되는데 침대로 받아주지 않거나 말도 없이 미키를 사지로 내모는데, 힘든 일을 하며 희생되는 미키를 소모품처럼 여기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마셜이 카이를 대할 때 인류의 대를 이을 수 있는 고귀한 인물로 여기는 모습과 상반된다.
영화의 대부분은 지구를 떠나 니플헤임으로 가는 우주선 안에서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4년 이상의 시간을 우주선에서 보냈기 때문에 시설은 낡고 열악하며 화물 운송선 느낌이 나기도 하는데, 유일하게 깔끔한 공간은 미키를 프린트하는 인체 생성 기계가 있는 공간과 마샬과 일파가 머무는 공간 두 곳이다.
복제인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점이 많다. 미키18이 나샤에게 마약 성분인 옥시조폴을 먹인 상태에서 미키17이 등장했을 때 나샤는 셋이서 사랑을 나누자고 말한다. 미키17은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약에 취한 나샤는 이전의 16명의 미키를 사랑했던 것처럼 자신은 여전히 미키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미키17과 미키18은 한 사람, 미키 반스이기도 하다. 초반에 인체 생성 기계를 개발한 사이코패스 과학자가 여러 명이 되어서 살인은 저질렀을 때 처벌에 대한 판결, 인체 생성 기계가 개발되었을 때 사용 허가 여부 모두 깊이 고민해볼 문제이다.
감독은 미키17을 어릴 적 어머니를 잃은 사건에 대한 죄책감에 둘러싸여 소심하고 낮은 자존감을 지닌 인물로 표현한다. 미키18은 자신감이 넘치고 다소 과격하고 공격적인 성향도 지닌 인물인데, 미키17이 마샬에게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모습을 들을 때나 미키17이 감옥에서 티모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일 등을 겪으며 변화를 겪게 된다. 이런 과정 속에서 미키17에게 형같은 존재로 보이기도 하는데, 미키17은 자신을 소모품으로 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을 수긍하는 수동적인 인물에서 미키18과 함께하며 성장하게 된다. 후반부 연설 장면에서 일파를 만나는 악몽으로 루핑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장며에서 성장한 미키17의 모습이 명확히 나타난다.
서로 다른 성격의 미키17과 미키18를 표현하는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는 단연 일품이다. 이미 위대한 감독임에도 새로운 장르와 새로운 배우들과의 작업 등을 통해 끝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봉준호 감독의 모습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둔감해져 잊고 있었던 생명 자체가 지닌 존엄에 대해 생각해보며, 미키17의 행복한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