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일기장/2025년

교무부장 제의

경준🌙 2025. 2. 1. 23:22

-25.02.01(토), 눈 온 뒤 흐림

교무부장 제안을 받았다.
졸업식으로 정신없는 연말 잠시 수석실에 들렀는데 수석 선생님이 교무부장을 해보라고 하셨다. 그 시기까지 교무부장님의 전출도 몰랐기 때문에 깜짝 놀랐고 사정을 말하며 부장을 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말씀드렸다. 다음날 교무실에서 교감 선생님이 음악 전담 제안을 하며 교무부장을 권하셨다. 같은 학년에 있는 S선생님에게는 연구부장을 제안받았다.

34살에 교무부장이라니.
이 학교에 근무한지 4년이 되었고 학교를 옮긴 서른 살부터 부장을 맡았다. 절반 이상이 신규 교사들로 구성된 학교라 당연히 내가 할 순번이었다. 2년 동안 과학정보부장을 한 후에는 승진할 생각은 없지만 배울 수 있는 좋은 선배들이 있을 때 해보고 싶어서 6학년 부장에 도전했다. 언젠가 해야 하고 교사라면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미리 도전하고 배우고 싶었다. 올해는 졸업 논문을 쓰고 합창 대회에도 도전하고, 연구회에 큰 행사들도 있어서 시간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6년 연속 6학년을, 최근 4년은 연속해서 부장을 맡아 지친 상황이기도 해서 담당업무 희망서에 부장을 체크하지 않았고 학년도 4학년으로 써서 제출했는데 교무부장 제안을 받다니..
 
사실, 제안을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 승진할 생각이 없지만 음악 전담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부탁을 받은 상황이고 어리기 때문에 조금 서툴러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마음 맞는 S선생님과 짝을 이루어 학교를 이끄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논문과 연구회 행사만 없으면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현재 상황 때문에 거절을 하고 올라왔다.
 
일단 거절했는데 교감 선생님께서 6학년 연구실로 오셔서 나와 S선생님에게 다시 교무, 연구부장 제안을 하셨다. 대화 중에 교감 선생님께서 전출가시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처음 교무부장이라는 직책을 맡는데 의지할 수 있는 교감 선생님이 떠나고 어떤 분이 오는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우리 학교는 학급 수가 많아 대체로 신규 발령을 받은 교감 선생님이 오시는데 적응을 도우며 이끌어갈 자신이 도무지 없었다. 다시 거절했다.

개교 5년 차를 맞는 신도시의 학교로 최근 4년 사이 인근에 2개 학교가 새로 개교를 했다. 그 시기마다 일시적으로 학생들이 몰렸다 개교하면 빠지기를 반복했다. 올해도 그렇다. 그 결과 작년에 비해 학급 수가 급격히 줄어들 예정이며, 전출 가는 교사들이 여러명이지만 줄어드는 학급 수도 많아 외부로부터 전입이 없다고 했다. 공교롭게 전출 가는 교사들 중에는 교무 부장, 연구부장, 인성부장이 포함되어 있는 상황이다. 


놀랍게도 열세 개의 부장 자리 중 열한 개가 찼고 교무, 연구부장 자리만 비워져 있었다. 그 후로도 교감 선생님은 여러 차례 제안을 하셨다. 나 말고 다른 부장님들께도 제안을 했는데 아무도 수락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학교에 오래 있어 사정을 잘 알고 기존 부장들 중 유일하게 부장을 쓰지 않은 내가 교무부장을 맡기를 바라시는 눈치였다. 책임감도 크고 늘 갈등에서 중립적인 위치를 취해서 해주기를 바란다는 말씀에 나를 높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다른 부장님들도 교무실에서 만나면 열심히 돕겠다고 교무부장을 맡아보라고 권하셨다. 사실, 다른 부장님들의 권유가 기분 좋게 들리지 않았다. 모두 나보다 교육 경력이 훨씬 많으신 분들인데 자기들은 하지 않고 후배에게 권하며 열심히 도와주겠다고 하는 말이 도무지 달갑게 들리지가 않는다. 
 
눈이 많이 온 연휴 다음날 학교에 갔는데 여전히 교무부장 자리는 공석이다. 승진을 희망하는 교사가 많은 학교는 서로 부장을 하려고 관리자에게 잘 보이는 분위기라 관리자가 왕처럼 권력을 휘두르고, 우리처럼 승진을 희망하는 교사가 없는 도시 지역 학교에선 연말마다 교감 선생님이 교실을 돌며 부장을 부탁하러 다녀야 한다. 교사가 된 처음부터 교감 선생님의 자리가 정말 힘들어 보였다. 길고 어려운 승진의 과정, 쉽지 않은 교감의 자리를 6년 동안 거쳐 마지막 8년을 편하게 보내려고 승진을 하는 것부터가 요즘 시대에는 맞지 않는 상황이다. 
 
학교를 대표하는 교장, 교감의 자리는 교사들이 서로 하고 싶어 하는 자리여야 한다. 그래야 더 좋은 관리자가 나오고 좋은 교육이 이루어진다. 현재의 승진 제도는 교사들이 존경하고 따를만한 리더가 관리자가 되는 과정이 아니다. 기피 지역 근무나 교육부의 정책을 충실히 실현한 교사에게 가산점을 주어 이루어지기 때문에 존경받는 관리자가 나오기 어려운 구조다. 이런 말은 나의 학창 시절부터 혹은 그전부터 있었지만 여전히 변화는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