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일기장/2023년

부고, 그리고 메신저

경준🌙 2023. 2. 14. 03:19

오후에 신규 교사 때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의 부고를 접했다. 발령을 받고 전담으로 근무하다 11월에 갑자기 담임으로 들어가 같은 학년을 하게 되었지만,  처음으로 '같은 학년 선생님들'이 생겼고 퇴근 후에도 많은 시간을 함께해서 짧았지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다음 해에 학교를 옮기시고 난 입대를 하며 소식이 끊겼었는데 갑작스러운 소식에 너무나 놀랐다.

교육 지원청에서 발령증을 받고 첫 학교로 와 다른 선생님들이 수업을 마치기까지 어색하게 교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교무실에 오시더니 "선생님! 선생님 모습이 참 선하십니다."라고 하셨던 모습이 아직까지 선하다. 모처럼 첫 동학년 선생님들과 근황을 묻고 또 오랜만에 뵙는 선생님들을 만나 한참을 이야기하고 집으로 왔다.
 
부고를 접한 과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이 근무했던 친한 형에게 소식을 접했다. 내가 근무하는 지역은 부고를 전체 교직원이 볼 수 있게 메신저로 알린다. 교육청에서 금지하는 공문을 매해 발송하지만, 지역에 오래 머무는 교사들이 많기 때문에 이어지고 있다. 근무하는 학교는 신규 교사가 많은 학교 특성상 투표를 통해 부고를 전체 쪽지로 전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친한 형이 알려주지 않았으면 이 소식을 놓칠 뻔했다.
 
신규 때는 별 문제의식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하루에 여러 개가 오는 부고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이것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당사자가 하거나, 지인에게 부탁하거나, 소액의 금액을 지불하고 업체에 맡기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부고는 알려지게 된다. 결국은 당사자가 조금 편하면서 일면식도 없는 무수히 많은 교직원들은 모르는 사람의 부고를 접하게 되는 것이다. 부고가 필요한 것은 지역에 오래 머문 연차가 높은 교직원들이고, 실질적인 감독을 하는 주체들도 상대적으로 고경력이기 때문에 이런 관행을 알면서도 바뀌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론 하루에 접수되고 공람되는 공문, 메일, 쪽지들 중에서 정말 해야 하는 일이나 나와 관련된 내용들은 극히 비율이 낮다. 메신저로 오는 것들도 그냥 넘기는 것이 정말 많은데 부고 한, 두 개가 들어오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입장도 있다. 특히, 경조사를 중시하는 한국의 특성상 어쩔 수 없다는 입장도 이해가 된다. 대기업들도 관련 방식을 메일로 알린다고 한다. 무엇이 옳은지는 잘 모르지만, 교직 문화의 특성상 부고를 전체 쪽지로 알리는 관행은 상당 부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